호밀밭의 파수꾼, 아쉬운 제목 번역의 예 (4,100자)

영문학 고전,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2박3일간 방황하는 (소위 중2병 쩌는) 소년 홀든 콜필드를 주인공이자 화자로 한 1인칭 장편소설이다. 미국의 은둔형 작가였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1919.1~2010.1)의 데뷔작이면서 대표작으로 불린다.

피처 이미지
미국 LITTLE, BROWN AND COMPANY에서 1951년 첫 출간된 The Catcher in the Rye 영어판을 2001년 재출간한 페이퍼백 판본 책등.

1951년 출간 이래 수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국내에 이걸 번역 출간한 출판사만 문예출판사(1985), 소담출판사(1992), 덕성문화사(1994), 현암사(1994), 문학사상사(1998), 혜원(1999), 민음사(2001), 청연(2001), 다락원(2006), 하서(2006), 동서문화사(2008), 민중출판사(2010), 한국헤르만헤세(2014), 이렇게 13곳에 달한다. 그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로 2001년 번역 출간된 판본은 2017년 8월까지 92쇄를 기록, 50만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5&mcate=M1001&nNewsNumb=20170825666&nidx=25667) 짐작컨대 실제 읽은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작품을 처음 접한 건 대략 20년전 고등학생 때다. 앞서 열거했듯 문예출판사가 민음사보다 먼저, 같은 소설을 1985년 ‘문예 세계문학선 3’으로 번역 출간했다. (http://www.moonye.com/search/Search_View.asp?Num=268&PageNo=1&Search_Name=%C8%A3%B9%D0%B9%E7&Search_Title=bName&Category) 이게 국내 최초 번역판본인 것 같다. 나름대로 이 판본에 애착이 있지만, 번역 결과물에 대해선 아쉬움이 있다. 특히 이후 모든 번역판본이 똑같이 따른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영단어 캐처(catcher)에 대응해 ‘파수꾼’이라는 번역어를 선택한 것이 못마땅하다. 작품 내내 상소리를 잔뜩 섞어 말하는 주인공의 말투를 전혀 느낄 수 없도록 순화된 본문 내용을 차치하고 이 제목 한 단어에 더 신경이 쓰인다. 화자의 독백으로 채워진 전체 본문에서, 파수꾼이라는 어휘가 너무나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the catcher in the rye의 번역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니라 ‘호밀밭의 포수’여야 했다. 다음은 이를 주장하기 위한 논증이다.

작중 호밀밭 은유가 등장하는 본문과 번역문

이해를 돕기 위해 이 단어가 등장하는 본문 일부를 인용해 봤다. 26장 구성 중 22장 내용의 후반부다. 16살짜리 주인공 홀든(Holden)이 10살짜리 동생 피비(Pheobe)에게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뭔지, 그리고 어떤 뭘 하고싶은지 말하는 부분이다.

“Anyway, I keep picturing all these little kids playing some game in this big field of rye and all. Thousands of little kids, and nobody’s around―nobody big, I mean―except me. And I’m standing on the edge of some crazy cliff. What I have to do, I have to catch everybody if they start to go over the cliff―I mean if they’re running and they don’t look where they’re going I have to come out from somewhere and catch them. That’s all I’d do all day. I’d just be the catcher in the rye and all. I know it’s crazy, but that’s the only thing I’d really like to be. I know it’s crazy.” (1951년도 초판 원문)

“어쨌든, 나는 어린 애들이 큰 호밀밭 들판에서 무슨 시합하고 노는 걸 쭉 상상했어. 어린 애들 수천명이 있고, 주위엔 아무도―내말은, 어른이라곤―나말고 아무도 없는 거야. 그리고 나는 까마득한 벼랑 끝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나는 걔들이 벼랑으로 오기 시작하면 모조리 잡아채야 돼―내말은 걔네가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달리면 나는 어디선가 나타나서 잡아채야 한다고. 나는 온종일 그러는 거지. 나는 그냥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이 되고 싶다고. 이상하다는 거 알지만, 내가 하고싶은 건 이거 하나뿐이야. 이상하다는 거 알아.” (자체 번역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온라인판 표제어(http://stdweb2.korean.go.kr/search/View.jsp?idx=348767) 중 파수꾼의 1번 의미는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2번 의미는 “어떤 일을 한눈팔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위 인용 문단을 그냥 독해하는 차원에서는 catcher를 파수꾼으로 번역해도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작가가 하필이면 the catcher in the rye라는 어구를 제목으로 쓴 점을 염두에 뒀다면, 작중에 배치된 주요 상징과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번역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2가지 주요 상징으로 본 ‘catcher’의 진짜 의미

나는 작중 홀든이 ‘야구’라는 스포츠와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catcher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본다. 즉 catcher는 야구의 포수(捕手)를 가리킨다. 따라서 제목 번역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니라 ‘호밀밭의 포수’라고 써야 했다고 생각한다.

작중에서 야구를 연상시키는 상징을 크게 2가지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죽은 동생 앨리의 야구 글러브(baseball glove)고, 다른 하나는 빨간 사냥모자(red hunting cap)다. 둘 다 홀든이 나름대로 애착을 갖고 있는 중요한 소지품으로 묘사된다. 미국서 학생들에게 도식적인 고전문학 독해 참고자료를 제공하는 클리프노츠(https://www.cliffsnotes.com/literature/c/the-catcher-in-the-rye/critical-essays/major-symbols)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선 앨리는 작중의 거의 모든 인물을 끔찍이 싫어하는 홀든이 피비와 함께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홀든은 그의 유품인 왼손잡이 외야수용(fielder’s) 야구글러브에 앨리를 향한 심리적 애착을 투영한다. 가족 외의 인물에게 이 글러브를 거의 보여 주지 않지만, 작문숙제를 부탁한 룸메이트에게 그 글러브를 주제로 한 글을 써 주기도 한다. 앨리는 위에 인용한 홀든과 피비 남매의 대화 중반에 재등장해, 홀든의 호밀밭 얘기로 이어지는 맥락을 만들어낸다. 앨리의 언급을 포함한 22장 본문 후반부 번역 내용은 별도 글(https://encodent.com/the-catcher-in-the-rye-22)로 게재했다.

그리고 빨간 사냥모자는 홀든이 경기를 앞두고 펜싱 장비를 몽땅 잃어버린 사고를 쳤던, 토요일 아침 뉴욕에서 1달러를 주고 산 물건이다. 홀든은 이 모자에 챙이 길고 귀덮개가 달려 있어 우스꽝스럽게 생겼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꽤 마음에 들어 한다. 홀든은 그 모자의 앞뒤를 반대로 뒤집어 쓰길 좋아하는데, 이는 실제 야구 경기에서 야구모자를 뒤집어 쓰고 마스크를 쓰는 포수의 모자쓰기 방식을 홀든이 흉내내려고 하는 행동으로 묘사된다.

즉 홀든은, 동생 피비나 앨리같은 “어린 애들이 큰 호밀밭 들판에서 무슨 시합하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이들이 놀다가 낭떠러지로 달려오더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포수(catcher) 포지션’을 맡고 싶다는 얘길 한 것이다.

포수는 떨어질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직접’ 받아내는 역할에 대한 은유다. 이걸 ‘파수꾼’이라고 번역한 결과, 아이들을 직접 받아내는 역할이라는 의미에선 멀어졌다. 그보다는 떨어질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경계를 서는, 감시하는 역할에 대한 은유로 뉘앙스가 틀어졌다. 어쩌면 아이들이 추락하지 않도록 지켜 줄 다른 어른의 조력을 필요로 한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홀든은 자신이 “어른이라곤 나말고 아무도 없는” 호밀밭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해석의 여지를 남긴 번역 결과가 전체 은유의 틀과 어울리지 않게 돼버렸다.

141202 최초 주제 구상. 150112 자료 조사 시작. 170402 현재 블로그 글로 임시 저장. 171006 논증 근거 보완, 게재. 171008 작성 및 편집 이력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