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다시 지도데이터 반출을 신청한다면

한국 정부가 언제까지 지도데이터 반출을 통제할 수 있을까. 그 권한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게 남지 않은 분위기다.

2016년 6월, 구글은 정부에 한국의 지도데이터 반출을 신청했다. 국토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이 관리하는 한국 전 지역의 지도데이터를 국외로 가져갈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국외에 소재한 구글 데이터센터에 부족한 한국 지역 공간정보를 가져가, 본사의 ‘구글맵스’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지도데이터 자체는 민간 기업이나 기관이 매매할 수 있는 상품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를 국외로 가지고 나가려면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공간정보법(옛 측량법)에 근거해, 한국 지역의 디지털 지도 데이터 국외반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돼왔다. 한국 일부 지역의 지도데이터를 연구 등 비상업적 용도로 쓰는 경우 일부 허용되고 있었다.

인공위성으로 지구를 촬영해 만든 세계지도. [사진=Pixabay]
정부의 과거 반출 승인 권한은 국토부 장관에게 단독으로 있었지만, 2014년 법 시행령 개정으로 그 주체가 바뀌었다. 국토지리정보원, 미래창조과학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유관부처가 참여하는 ‘지도 반출 협의체’가 소집돼 반출 여부를 결정하게 됐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도 반출 협의체를 소집해 2016년 6월에 1차, 8월 2차 회의를 열고 구글의 신청 내용을 검토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사안이 공론화하면서 찬반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찬성 논리는 구글맵스를 이용하는 한국인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 구글맵스를 활용하려는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 2가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수렴했다. 반대 논리는 반출 허용시 발생할 수 있는 안보 위협 증가 우려, 현행 규제가 구글과 경쟁 관계인 국내 포털 등 지도서비스 사업자에 역차별이 될 것이란 반감으로 요약됐다.

국토지리원은 8월 하순으로 예고했던 결정 시한을 늦추며 심사숙고한 끝에 11월 중순 최종적으로 반출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지도 반출이 한반도의 안보 위협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고, 정부는 이를 해소할 보완책을 제시했으나, 구글은 그걸 수용하지 않았다는 게 불허 명분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정부의 보완책이란, 구글이 가져갈 지도데이터에서 군부대와 기간시설 등 민감한 정보를 감춰 달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구글은 처음부터 이를 못 받아들인다는 입장이었다. 사용자에게 온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는 게 이유였다.

구글의 대외적 입장에 변화가 없었던만큼, 정부가 몇달씩이나 끌다 반출 불허 결정을 내린 배경은 국내 상황에서 찾아야 했다.

우선 논란이 일었던 기간동안 오락가락했던 여론도 한 몫을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국토지리정보원은 논의 초기 구글의 대응에 따라 반출 가능성을 열어뒀어도 이후 반출에 부정적인 쪽으로 기운 여론을 무시하긴 어려운 처지였을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초여름까지 논란이 불거진 초기엔 찬성 여론이 우세한 듯 비쳤다. 지난 겨울 국내에 돌풍을 일으킨 증강현실게임 ‘포켓몬고’가 각국 출시 일정을 발표할 시기였다. 포켓몬고 국내 출시가 한국 게이머들 기대보다 늦어지는 상황이 국내 지도데이터 반출 규제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실제 국토지리원의 반출 검토가 진행된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는 반대 여론이 점차 강해졌다. 국내 포털사 측이 제기한 의혹대로, 구글의 지도데이터 반출 신청은 조세회피를 위해 국내에 직접적으로 서버를 두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어느정도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또 반출 논의가 한창이던 작년 8월은 공교롭게도 최병남 국토지리정보원장의 임기가 끝나갈 때였다. 최 원장은 2014년 9월 5일 취임해 2016년 9월 4일부로 2년간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선 어떤 결론을 내리든 후폭풍이 클 수 있는 지도 반출 이슈를 퇴임 직전 매듭짓기가 어려웠을 수 있다.

최 원장과 국토지리정보원이 이런 시기적 상황을 의식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난해 8월 하순 예정했던 반출 신청 결과 발표 시한을 늦췄다. 그리고 11월 최종 반출 불허를 발표했다. 그 사이 9월초, 최 원장의 임기는 올해 9월 4일까지로 1년 연장돼 있었다.

최 원장의 남은 임기는 불과 4개월(170530 현재 기준 3개월)이다. 그 안에 구글이 재차 지도데이터 반출을 신청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다른 한국 정부가 지도데이터 반출과 관련된 다른 문제를 떠안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 지난해 11월 최종 지도반출 불허 결정에 깊이 검토되지 않았던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통상 압력 가능성이다.

당시 최 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협의체는 그간 언론에 보도된 다양한 쟁점을 모두 논의했지만 법제도 상 안보 영역을 논의하게 돼 있어 (심의 내용은) 안보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언급했다. 통상 압력 가능성을 검토했느냐는 물음엔 “그런 부분에 대해 논의는 했지만 현재로선 통상 압력 등이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깊게 논의하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를 차기 대통령으로 맞은 미국 정부는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일반적이다. 그런 미국 정부 관점에서 한국의 지도반출 제한이 일종의 ‘무역장벽’이다. 한국에 진출하려는 미국 지도서비스 사업자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통상대표부(USTR)를 통해 지난 3월말 ‘2017년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우선협상 대상국과 감시대상국을 선정하고 통상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근거가 된다. 보고서는 한국이 ‘위치기반데이터(지도)’ 수출을 제한해 내비게이션 서비스 제공자의 한국 진출을 제한하는 ‘디지털 무역장벽’을 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 내용을 보면, 미국 정부는 지도 반출 제한을 안보 이슈로 다루려는 한국 정부와 달리, 이 사안을 통상 이슈로 다루고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드러냈다. 해당 보고서 영어 본문을 아래에 한국어로 번역했다.

2016년 한국 기관은 (지도) 반출 신청을 10번째로 불허했다. 미국 이해관계자들은 한국 관료들이 반출 승인 여부를 글로벌 지도서비스 사이트에서 한국의 위성이미지 시인성을 낮출 의향에 결부시키고 있다고 제보했다. 한국 당국자들은 한국의 고해상도 상업용 위성 이미지의 글로벌 가용성을 제한하려는 뜻을 비쳐 왔다. 한국을 비롯한 고해상도 이미지는 독립적인 상용 제품으로 (그리고 종종 무료로) 널리 통용되기 때문에 (온라인 지도같은) 특정 서비스의 가용성 제한이 그 일반적인 우려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미국은 한국의 국가안보에 민감하지만, 한국의 이미지 관련 현 정책이 유의미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며,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강구하기 위해 한국과 협의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은 한국의 지도서비스 시장에 대한 접근이 별개 문제라 생각하고, 해당 시장을 외국 공급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내용을 한국과 지속 협의할 것이다. 한국은 2018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해, 전세계에 출시된 위치기반서비스 이용을 기대하는 국제 방문자를 모으게 된다. 이 행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시급성을 가중시킨다.

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지도 반출 제한을 ‘무역장벽’으로 정의했고, 신청 불허 횟수까지 헤아리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이 시장을 개방하기 위해 지속 협의하겠다고 한다. 이는 앞으로 한국 정부가 지도 반출 제한을 빌미로 미국의 통상 압력에 시달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트럼프 정부는 이미 공공연히 한미FTA 재협상을 거론하며 통상 관계의 실리를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런 미국의 통상 압력 가능성을 아무리 낮게 예상하더라도, 제19대 대통령이 이끌 한국 정부에선 이를 심각한 사안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간 한국 지도데이터 반출의 열쇠는 온전히 한국 정부 손에 들려 있었다. 구글이라는 미국 기업은 한국의 법에 따라 정부에 지도 반출을 신청하고, 한국 정부가 제시한 조건에 따르거나 그걸 원치 않으면 불허 통보를 받는 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 정부가 이 사안에 높은 관심을 둘수록, 한국 정부의 지도 반출과 관련된 권한은 제한될 수 있다.

이는 제19대 대통령이 이끌 차기 한국 정부가 이 사안에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치밀하게 대미 통상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지에 달렸다. 일단 지도데이터 반출 의제가 한미간 국가안보 사안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통상이슈로 취급된다면, 결국 무역협상을 위한 교환카드로 전락할 듯하다.

구글은 언젠가 다시 한국의 지도데이터 반출을 시도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그 때에도 여전히 그걸 막을 권한을 갖고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170507 청탁 원고로 작성했으나, 타이밍이 안 맞아서 회수함. 170530 개인 블로그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