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기자가 보도윤리를 어겼다는 주장 (3,1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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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번역 출간한《저널리즘의 기본원칙(빌 코바치·톰 로젠스틸 공저)》 본문 일부.

2017년 1월 2일자 JTBC 보도 때문에 타임라인이 종일 시끌시끌. 3일이 되니 누가 “기자는 사건을 보도만 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는 보도윤리 내지 저널리즘 원칙이 있다는 전제로, 취재 대상인 수배자를 직접 경찰에 신고한 기자의 행동을 비판해서 또 시끌시끌. 4일이 되니 기자가 취재하던 수배자를 경찰에 신고한 건 시민의 의무를 불개입 원칙보다 우선시한 것이고 그게 옳다 그르다는 논박으로 계속 시끌시끌.

보도하려면 관찰자로 남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분은, 자신의 완결된 글에서 보도윤리가 공인된 기준이라 알려주는 근거나 출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비판이 유효함을 뒷받침할 사례로 CNN 정치부 에디터 레이첼 스몰킨의 2006년 기고문에 담긴 일화를 인용했다. 그 외에 든 예시는 자연다큐멘터리 촬영자의 먹이사슬 개입이나, 대학에서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을 듣는 학생과 사귀는 조교 얘기 정도다.

내 배움이 얕아 그렇겠지만 며칠간 저 논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다. 저널리즘의 원칙과 보도윤리를 정리한 자료에서 불개입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명제를 본 기억도 가르침을 받은 기억도 없어서다. 보도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대체 언제부터 있었고 그게 어디에 나오는 얘긴지 당최 모르겠다. 보도윤리에 불개입 원칙이 있다고 서술한 자료가 있는지 직접 검색을 좀 해 봤는데, 아직 못 찾았다.

대신 ‘불개입성’을 직접 언급한 문헌을 하나 찾았다. 학술지 [방송문화연구 2005년 제17권 2호]에 실린 [비판적 담론 공중의 등장과 언론에 대한 공정성 요구:공정한 담론 규범 형성을 위하여]라는 논문(http://hosting03.snu.ac.kr/~jwrhee/paper/CDPs2005.pdf)이다. 논문 저자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는 논문 2. 2) 중립성/불편부당성 부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전략)… 중립성은 정책적으로 적용될 때, 불편부당성의 원칙으로 구체화되어 사용되는데, 여기에는 불개입과 균형이라는 하위 개념이 포함된다. 다원주의적 사회에서 다자간 이해관계와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그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하더라도 균형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언론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기구’로서 불개입이란 대안을 택하기 어렵다. 사회적 갈등이 빚어질 경우 이를 탐색하고, 조사하고, 정보적 표현물을 만들어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본래적 임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발췌한 내용을 다시 쓰면, 이런 얘기다. 언론에 ‘불편부당성’의 원칙을 요구할 수 있다. 언론은 그걸 실현할 방식으로 불개입 또는 균형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의 본래 임무를 놓고 볼 때, 불개입을 유효한 선택지로 볼 수 없다.

여기서 이런 명제를 끌어낼 수 있다. 불개입은 그 자체로 보도윤리도 저널리즘 원칙도 아니다. 따라서 기자에게 보도윤리를 빌미로 취재를 포기할 각오 없이 상황에 개입하지 말라는 요구는 애초에 부당하다. 위 논문을 근거로 논증을 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여전히 보도윤리에 불개입 원칙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그걸 부정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근거 하나를 찾았다.

이 얘기를 여기서 끝내도 될 것 같지만 사족을 붙여 본다. 남는 의문 때문이다. 애초에 불개입이든 균형이든 선택해 실현해야 하는 ‘불편부당성’은 왜 지켜져야 하는가? 애초에 불개입 원칙을 문제삼은 주장이 (내 생각엔) 과녁을 빗나가긴 했지만, JTBC 기자의 개입 행동(신고)이 실제로 지켜져야 할 불편부당성 원칙을 훼손한 건 아닌가? 이 의문을 풀어주는 설명이 위 발췌한 내용의 바로 앞부분에 있었다.

2) 중립성/불편부당성중립성(neutrality) 또는 불편부당성(impartiality)을 들어 언론 비판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원래 중립성은 이념적으로 자유주의의 핵심적 가치이다. 자유주의의 근본 원리는 국가가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나 이해 추구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국가가 어떤 집단에 편을 들어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중략)… 즉 자유주의자가 다양한 개인이나 집단이 보유한 이상과 가치에 대한 불개입성을 강조할수록 다음과 같은 모순에 빠지게 된다. 어떻게 중립성과 같은 이상과 가치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그와 화해할 수 없는, 때로는 그와 정반대되는 ‘당파성’과 같은 이상과 가치를 주장하는 자나 집단에 대해 중립적일 수 있는가. 반자유주의자가 보기에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중립성이란 스스로 신념의 부족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자기 기만의 모순을 범하는 것 둘 중의 하나를 뜻할 뿐이다(Lamore, 1987).

두번째 발췌한 내용을 다시 쓰면, 이런 얘기다. 언론에 불편부당성의 원칙을 요구할 수 있는 이념적 근거는 자유주의 국가의 핵심 가치인 중립성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나 이해 추구에 간섭해선 안 되고 어떤 집단에 편을 들어 혜택을 주지 않아야 중립성을 지킬 수 있다.

‘이해 추구’는 법이나 보편 규범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발생해야 한다. 이런 전제로 JTBC 기자의 개입에 따른 보도윤리 위반 운운한 상황을 다시 보자. 수배중인 취재 대상자가 현지 검경의 추적을 피해 도주하는 걸 정당한 ‘이해 추구’라 볼 수 있나? 이 상황이 JTBC 기자의 신고를 불개입이나 불편부당 원칙 위배의 잣대를 들이댈 적절한 사례인가? 이런 판단을 거치지 않은 결과가 보도윤리 위반 주장이 아닌가 싶다.

무리한 가정이지만, 양보해서 현지 검경과 수배중인 대상자를 대등한 ‘이해 추구’의 주체로 볼 수도 있다 치자. 그럼 JTBC 기자의 개입은 불개입이나 불편부당성 원칙 위배가 맞을까? 벌어질 일을 상상해 보면, 기자는 오히려 단독보도만을 목적으로 신고 없이 접촉을 시도한 뒤 (신고가 안 되면 직접 제압은 더욱 안 되니까) 수배자의 도주를 촉발할 수밖에 없다. 경찰 신고를 개입이라 표현한다면 이건 개입이 아닌가?

다행히 JTBC 기자의 보도윤리 위반 주장을 이미 온라인에서 많은 현인들이 반박한 상태다. 주장에 문제가 많다는 말로 동어반복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보도윤리,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불개입’이 있었다는 전제 자체에 의구심을 품어 글을 쓰게 됐다. 앞서 적었듯이 이를 부정할 형식적 근거를 하나 찾아 인용해 뒀지만, 10년도 더 전에 나온 글이니만큼 상반되는 다른 근거도 있을 수 있다. 제보 바란다.

170402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