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같은소리하고있네 (1,0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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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길 돌계단 위 낙엽. [사진=Pixabay]
대한민국에 어느 중견기업이 있더랬다. 독특했다. 임직원 규모는 항상 365명이었고 구성원 소속은 무조건 4개 부서 중 한 곳이었다. 각 부서는 각자 업무 성격과 경쟁력이 뚜렷했기 때문에, 독립적인 성수기를 책임졌다. 연중 성수기를 맞은 1개 부서가 회사를 먹여 살렸다. 나머지 3개 부서는 자기 성수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매년 인접 부서간 소소한 인사 이동은 있었지만 4개 부서 규모는 항상 엇비슷했고, 성수기가 돌아오는 순서도 일정했다.

회사는 그렇게 꽤 오랫동안 잘 굴러 갔다. 그러나 이후 수십년간 당면한 시장 변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몇 년 새 급진적인 구조조정, 전환 배치가 이뤄졌다.

구성원 규모는 여전히 365명이지만, 이후 부서는 4개에서 2개로 통폐합됐다. 그러면서 연중 성수기를 맞은 1개 부서가 회사를 먹여 살리고 나머지 부서가 자기네 성수기를 기다리는 시스템은 유지됐다. 어려움도 있다. 교대 주기가 길어진 각 부서의 업무 기복이 심해졌다. 그럼에도 회사는 굴러 간다. 다만 10년은 족히 됐는데 아직도 통폐합 소식을 모르는 거래처 사람들이 있다. 기존 4개 부서 업무를 2개 부서가 공백 없이 나눠 맡은 덕분이다.

이 조직의 변화를 실감하려면 사무실에 직접 들러 봐야 한다. 방문자들은 이 회사 건물 출입구에서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각 부서의 명패가 달린 엇비슷한 업무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다.

구조조정 전엔 이랬다. 출입구 한 쪽에 가장 가까운 부서는 ‘봄’이다. 그 다음엔 ‘여름’이 보인다. 그 다음엔 ‘가을’이 보인다. 그 다음 ‘겨울’이 보인다. 여기까지 돌면 건물 한 바퀴를 돌아 출입구로 되돌아온 거였다. 이 구조는 여전하다. 통폐합으로 바뀐 건 뭘까. 사실상 소멸한 2개 부서의 명패 자리다. 하나는 ‘봄’이다. ‘겨울’ 부서에서 ‘여름’ 부서로 가는 길목 파티션에 붙어 있다. 나머진 ‘가을’이다. ‘여름’ 부서에서 ‘겨울’ 부서로 가는 길목 파티션에 붙어 있다.

‘한반도’. 이 중견기업 건물 현관 명패에 새겨진 회사 이름이다. 여전히 여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하게 남아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170402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