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와이 윤서체 저작권 사태를 접하며 (3,100자)

피처 이미지
폰트파일 저작권 침해 여부가 이용방식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고 안내하는 문화부 가이드라인 일부 캡처.

 

서체 저작권 때문에 시끌시끌하다. 윤디자인연구소(現 그룹와이)에서 만든 ‘윤서체’가 중심에 있는 듯. 포털 뉴스란에도 실시간 검색어에도 줄줄이 나온다. 오늘아침까지 두 손으로 꼽을 수 없는 매체들이 쉰 꼭지 넘는 기사를 쏟아냈다. 지금은 수백꼭지로 증식했다.

검색을 통해 확인 가능한 최초 보도는 지난 21일자 한국교육신문의 300억 대 폰트 저작권 학교 공습 위기 기사다. 1주일만에 서울신문에서 28일자로 내보낸 [단독]“게시판 등 윤서체 글꼴 무단 사용” 300억대 소송 표적이 된 학교들 기사에 붙인 [단독]이 좀 애잔하지만 넘어가자.

그룹와이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우산’이란 데서 인천지역 초등학교 90곳에 ‘윤서체를 무단 사용해 저작권법을 위반했으니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건데, 383종 유료 서체 프로그램을 275만원에 사면 소송 대신 합의해 줄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는 게 보도 요지다.

지난 기록을 좀 살펴 보니 그룹와이가 윤디자인연구소 간판을 쓸 때부터 서체 저작권 합의금 시비로 악명을 좀 떨치긴 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여기로부터 저작권 위반사례 추적 의뢰를 받았을 우산 등 법무법인이 개인 기업 할 것 없이 연락을 막 해대서 그랬을 터.

반면 페이스북 생활코딩같은 커뮤니티에선 이번 사안에서 저작권자의 권익이 보호돼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듯하다. 서체 디자인 업계 종사자들은 반가워 할만하다. 이밖에 일반적인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은 어떨지 모르겠다. 어쩌면 대부분은 여전히 관심이 없을 지도….

서체 디자인업체의 ‘합의금 장사’일까

그룹와이와 법무법인 우산의 초등학교 대상 저작권 침해 주장은 단순한 합의금 장사와 성격이 달라 보인다. 법무법인이 다짜고짜 학교에 합의를 요구한 게 아니라, 그 공문에 앞서 그룹와이 측에서 대표명의의 저작권 위반사례를 곁들인 계도성 공문을 보냈다는 언급이 있다. 그런데 학교측 실무자가 저작권자의 공문을 협박마케팅 쯤으로 봐넘겨버렸으니 빡친 저작권자가 통상적인 권리행사 단계에 들어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단독보도한 서울신문보다 이 사건을 1주일 빠르게 기사화한 한국교육신문이 비교적 상세히 다룬 내용을 보면 그렇다.

일반인들에게 잘못 알려진 상식 중 하나가 ‘출력물에는 유료 서체를 써도 저작권 침해 건으로 걸릴 게 없다’는 믿음인데, 꼭 그렇지 않다. 블로거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내용이 대략 이런 식이다. 법무법인에서 서체 저작권 침해했다고 연락 오면 무조건 합의금 뜯어내려는 개수작이니 무시하라. 맞을 수도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게 문제다. 무시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실무자가 이같은 인식으로 대응했다간 진짜로 합의금 뜯기거나 소송당해 배상금 물 수도 있다.

출력물의 서체 디자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저작권 침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맞다. 그런데 출력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느냐가 중요하다. 출력 작업을 하는 컴퓨터에서 유료 서체가 필요했을 수 있다. 서체 디자인을 이미지 캡처 형식으로 떠서 사용했다면 괜찮지만, 컴퓨터 프로그램 형태의 서체가 필요한 환경이었다면 그 유료 서체를 사용하기 위한 권리가 확보돼 있었어야 한다. 저작권자가 이를 걸고 넘어질 경우 실무상 잘못이 없음을 증명하긴 꽤 복잡한 일이다.

불안 마케팅을 넘어서

한편 기사 자체가 이렇게 일반인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크게 쓰일 필요가 있는지는 좀 회의적이다.

업계 말투를 좀 쓰자면 기사에는 사안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들어갔다. 제목의 300억대 소송이라는 표현이 일단 그렇고, 공습이니 표적이니 하는 어휘도 그렇고. 본문에는 그룹와이 측 입장을 통해 ‘전국 1만2천개 초중고교’도 끌어들였다. 독자들에겐 일단 제목의 300억대 소송과 불특정 다수로 지목된 학교들이라는 표현이 센세이션하겠다. 내용을 보면 당신들 이러저러했으니 학교당 몇백만원씩 내면 소송까진 안 가드릴게 하는 투가 불편하기도 하겠다. 업무용 프로그램으로 괜찮아 보이는 폰트 좀 썼기로서니…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심정적으론 학교 실무자들에게 공감도 가겠다.

하지만 저작권자 측 입장에서는 권리행사를 위해 필요한 단계를 밟고 있을 따름이고, 중소기업 입장에선 기사를 통해 의지를 내비친 전국 1만2천개 초중고교 전체에 일일이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나름대로 부담스러울 수 있다. 대충 검색해 보면 그룹와이는 2014년 기준으로 사원수 50여명 남짓하고 매출은 60억원도 채 안 되는 조직인데, 매출규모 5년치에 상당한 소송을 진행한다는 건 좀 무모한 일 같다. 그냥 몇몇 학교를 통해 선례를 남긴 뒤 나머지 학교들과도 합의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의지가 클 것 같다.

이번 사건이 안 그래도 복잡한 서체 디자인과 컴퓨터프로그램으로서의 서체에 대한 저작권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혹자는 복잡하니까 그냥 무료 서체 씁시다 하는데, 저작권 걱정 없이 무료로 쓸 수 있는 서체들은 대부분 디지털스크린용으로 만들어진 ‘화면용 서체’다. 화면에서 예쁘게 나온다고 출력물에서도 멋지게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유료 서체들의 경우 출력물에서 높은 품질을 제공하기 위해 품이 들어간 경우가 많다. 오히려 화면에서는 멋대가리 없이 나오는데 출력하면 되게 멋있게 나오는 서체들도 꽤 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이런 서체를 업무상 전혀 쓰지 않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적절한 댓가를 지불하고 사용권을 구매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국내 서체 디자인 업체들 영세하단 얘기가 나온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서체 디자인 비즈니스는 소프트웨어와 디자인이라는 시장에 묘하게 중첩돼 있는데, 어쨌든 지적재산권 산업의 한 축을 이룰 만한 분야다. 아쉽게도 한국에선 여러가지 이유로 이 분야 기업들의 생존이 녹록찮다. 몇년 전에 기획기사로 이런 점을 지적한 기사를 열심히 써 보기도 했지만, 어째선지 전혀 흥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여기에 소개라도 해 본다.

[글꼴특집③]”국내 글꼴 시장, 풍요속 빈곤” 이유는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10816155601
[글꼴특집④]한글 글꼴 업계, SW산업 비교해 보니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10816155605

 

작년말 그룹와이가 윤서체의 저작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해 위임한 법무법인에서 인천지역 초등학교 수십곳을 상대로 손배소송 가능성과 합의를 통한 해결을 제시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그룹와이에 비난이 제기됨. 간단히 151229 페이스북 노트에 작성했던 논평을 160727 개인 블로그에 옮김. 170402 다시 옮겨 재편집.